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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시즌3 해석 리뷰
감독의 의도,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반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3은 그 자체로 완결된 픽션이지만,
그 속에 담긴 해석과 메시지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동반합니다.
이 글에서는 황동혁 감독이 말한 제작 의도와, 그 의도에 대한 다른 시선의 해석과 반론을 함께 제시해보려 합니다.
나 만의 생각이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보시고 그냥 지나치시길!!
🎬 감독의 의도: 자본주의와 양극화에 대한 은유
황동혁 감독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점점 심해지는 경제 양극화와 서민의 삶을 보며 오징어 게임을 구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 드라마는 “절망 끝에서 마지막으로 붙잡은 희망이 돈밖에 없는 사회”의 이야기였고, 게임은 극단적 자본주의의 압축판으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여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구조가 강제한 선택지일 뿐이라는 점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려 했습니다.
❓ 그러나…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일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경제 양극화는 정말 자본주의만의 결과인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임이라는 설정은 너무 극단적인 은유 아닌가?”
“그리고 그 작품은 상업적 성공을 통해 전 세계에 소비되지 않았는가?”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 아래 기회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한 시스템입니다.
그 안에서의 양극화는 제도의 실패보다는, 그 제도를 운용한 정치·사회적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 복지 제도의 미비, 교육 불균형, 기회의 편중 등은 시스템이 아닌 실행 방식의 문제
- 극단적 설정(게임=죽음)을 통해 자본주의를 단정짓는 건 과장된 은유일 수 있으며 오히려 다른 시스템을 보여주는게 아닌지.
- 그리고 이 작품 역시 그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만들어지고,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수익을 창출함
즉 비판 자체가 자본주의적 성공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아이러니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 해석: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선택’
감독은 시스템을 이야기했지만, 시즌3에서 더 강조된 것은 ★인간의 선택★ 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 룰 안에서 자발적으로 경쟁하고, 심지어 타인을 죽이기까지 하는가?” 이는 자본주의 탓이라기보다 그 체제를 받아들이는 방식, 해석의 방식, 그리고 인간 내면의 이기심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시스템은 운영하는 사람들의 선택되어지지만, 그걸 왜곡시키는 건, 인간의 욕망이다.
🧭지나친 비판은 구조에 대한 무책임한 회피일 수도
“시스템이 문제다”라는 전제가 강해질수록, 개인의 책임과 도덕성은 희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그 잘못된 시스템 역시 결국 사람에 의해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선거, 시민참여, 입법 과정—이 존재합니다.
즉, 문제를 바깥의 ‘시스템’ 탓으로만 돌리는 건 무책임한 해석일 수 있으며, 변화는 시민의 선택과 참여로부터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그런 면에서 사회구조와 인간 본성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사회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그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시즌3에서 성기훈의 마지막 선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나는 이 시스템의 룰을 따르지 않겠다.”
이는 결국 개인이 선택하는 윤리와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극한 상황에서조차 인간에게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강조합니다.
요컨대, 시스템만을 문제 삼기보다는 그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사상, 가치관, 판단력이 어떤지를 함께 돌아보아야 합니다.
잘못된 구조는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독단적으로 해석하고 이기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의해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 결론: 감독의 의도, 그리고 그 의도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다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도에 동의만 하기보단, 그 안에 숨겨진 모순과 해석의 틈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문제일 수도 있고, 그걸 받아들이는 인간의 욕망이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룰에 동의하고 살고 있습니까?” 오징어 게임은 그 질문을, 결코 하나의 방향으로만 던지지 않습니다.